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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에르 르메트르 - 실업자 (2022. 2. 8.)

함부르거 2023. 4. 4. 10:34
<피에르 르메트르 - 실업자(알라딘 링크)>
 
 

넷플릭스 드라마 시리즈 '신은 나에게 직장을 주어야 했다'의 원작이라고 해서 읽어 보게 된 소설입니다.

 

직장을 잃고, 나아가 평생을 바쳐 이룩한 집도 잃을 위기에 처한 50대 프랑스 남자가 대기업 임원들을 붙잡고 인질극을 벌인다는 이야기인데요.
 
읽으면서 느낀 건 요즘 현대사회가 처한 상황이란 게 어느 나라나 크게 다르지 않다는 거였습니다. 특히나 중년 남성들이 처한 실존적 위기라는 건 어디나 똑같다는 거죠. 
 
한국에서 50대 남자가 실직하고 알바나 하고 있으면 어떤 일이 벌어지나요? 아내와 자식들이 박대하기 이전에 본인들이 자존감 떨어져서 못 견딥니다. 남자들은 그 무엇보다도 자신이 사회적으로 별 쓸모 없어졌다는 걸 못 견뎌요. 한국보다 남녀 평등이 훨씬 잘 실현되고 있다는 프랑스에서도 이건 크게 다르지 않은 거 같네요. 뭐랄까 각국의 문화나 사회적 맥락 이전에 모든 남자들, 아니 수컷들한테 박혀 있는 유전적인 코드가 아닐까 하는 생각까지 듭니다.
 
이 소설의 주인공도 그런 위기에 처한 50대 남자입니다. 버젓한 대기업에 다니다 졸지에 실직을 하고는 바닥으로 떨어지는 자존감에 괴로워하는 사람이죠. 최저임금도 받기 힘든 잡일을 하면서 근근히 버티다가 어떤 계기를 만나 폭발! 정신 없는 스릴러 상황으로 들어가는 그런 이야기 되겠습니다.

 

이야기 자체로도 재밌지만, 무엇보다도 이 소설은 오늘날 우리가 맞닥뜨리는 사회적 문제들을 잘 체감하게 해줍니다. 소설의 줄거리와는 전혀 상관 없는 것 같지만, 이 소설의 배경에는 끊임 없이 뉴스가 나옵니다. 대량 실직하는 노동자들과 천문학적 보수를 벌어들이는 대기업 임원과 금융인들 등등 오늘날 우리 주변에서도 흔히 보이는 것들이죠. 이러한 뉴스들은 주인공이 겪는 일들이 결코 우리와 무관한 것이 아님을 실감하게 해 줍니다.

 

이 작품은 동시에 판타지이기도 합니다. 주인공은 결국 성공(?)하지만, 실제 이런 일을 실행할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되겠어요. 실직하고 집도 잃는 사람은 흔하지만, 거기서 역전을 이뤄낼 방법은 거의 없는 게 현실입니다. 이런 면에서 이건 사회파 소설임과 동시에, 불운한 처지에 놓인 사람들에게 대리만족을 선사하는 판타지 소설이기도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