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문화

커피를 맛있게 뽑기 위한 원칙

함부르거 2023. 4. 28. 09:16

[이미지 출처 : pexels.com]

 

커피를 맛있게 뽑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아니 과연 맛있는 커피란 무엇일까? 사실 맛있는 커피는 사람마다 정의가 다르다. 어떤 사람은 향에 집중하고 어떤 사람은 입에 닿는 텍스쳐를 중시하며 어떤 이는 라떼나 아이스 커피를 좋아한다. 맛있는 커피의 정의란 백인백색, 하나로 통일할 수 없다. 따라서 우리는 커피를 맛있게 뽑는 법에 대해서 다르게 접근해야 한다. 덧셈이 아닌 뺄셈으로. 즉 커피를 맛있게 뽑는 게 아니라, 맛 없지 않게 뽑아야 한다. 커피를 망치는 요소를 제거해야 한다는 의미다.

 

어떤 원두가 100의 맛을 가지고 있다면 추출 과정에서의 여러 마이너스 요소들로 인해 우리는 그 이하의 맛만 볼 수 있게 된다. 즉, 이 마이너스 요소를 최소화 하자는 것이다.  우리는 원두의 한계를 넘을 수 없다. 100 짜리에서 110, 120의 맛을 낼 수 는 없다. 100의 원두에서 100을 내자는 목표를 가져야 한다.

 

이런 대원칙을 가지고 볼 때, 어떤 것이 마이너스 요소가 되는지를 알기 위해서는 커피의 맛을 결정하는 요소를 알아야 한다. 요소별로 어떤 게 마이너스가 되는지 알면 우리는 커피 맛을 망치는 일을 최소화할 수 있다.

 

커피의 맛을 결정하는 요소는 크게 화학적 요소와 물리적 요소로 나뉜다.

 

1. 화학적 요소 

 

화학적 요소에는 원두의 품종, 신선도, 수질 같은 것들이 있다. 이건 사실 우리가 컨트롤하기 힘든 부분이 많다. 특히 품종은 위에 말한 바와 같이 사람마다 취향이 다 다르기 때문에 어떤 게 좋다고 말할 수 없다. 그냥 이것저것 마셔 보면서 자기 취향을 찾으라는 말 밖엔 할 수가 없다. 

 

하지만 신선도는 이야기가 다르다. 신선도는 커피 맛의 생명이다. 신선도를 망치는 가장 큰 요인은 무엇인가? 로스팅 후 공기(산소)에 얼마나 노출되었는가가 가장 중요하다. 원두를 로스팅하게 되면 지방 성분이 나오면서 특유의 향을 만들어 낸다. 이 지방이 산소에 닿으면 산패되면서 나쁜 냄새를 내게 된다. 따라서 산패를 최소화할 수 있다면 로스팅 후에도 꽤 오랫동안 맛을 유지할 수 있다. 일리, UCC 같은 업체들이 비싼 비용에도 불구하고 진공포장된 캔으로 원두를 유통하는 이유이며, 로스팅 후 최대한 단시간 내에 커피를 추출해야 하는 이유다.

 

신선도에 또 하나 중요한 게 있다. 바로 용구에 쌓이는 찌꺼기다. 이걸 간과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 찌꺼기도 엄연히 커피가루고 산패가 되며 나쁜 냄새를 원두에 옮긴다. 특히 그라인더에 남은 찌꺼기를 간과하는 경우가 많다. 용구 사용 후에 찌꺼기를 철저히 청소해 주는 것은 맛 없는 커피를 예방하는 중요한 루틴이다.

 

수질은 간단히 말해서 물에 뭐가 안 들어가 있을 수록 좋다. 즉 순수한 물에 가까울 수록 커피의 맛을 온전히 뽑아낼 수 있다. 우리가 흔히 좋은 물이라고 하는 광천수는 각종 미네랄 때문에 오히려 커피 맛에는 마이너스가 된다. 멤브레인 정수기로 뽑아낸 수도물 정도가 가장 좋을 것이다.

 

로스팅 정도도 일종의 화학적 요소다. 많이 볶느냐, 적게 볶느냐에 따라 원두에 화학적 변성이 각각 다르게 일어나고 맛도 다르게 뽑힌다. 하지만 이것도 취향의 영역이라 딱히 말해 줄 게 없다. 여러 가지로 해 보면서 최적의 로스팅을 찾으라는 말 밖엔 못하겠다.

 

커피를 볶으면 필연적으로 원두 내부에서 가스가 발생한다. 주로 이산화탄소다. 이것도 우리가 원하지 않는 커피 외의 잡맛이다. 흔히 핸드드립할 때 커피빵이 생긴다고 하는데, 원두에서 가스가 나와서 그런 거다. 핸드드립에서 뜸들인다고 하는 행위는 주로 가스를 제거하기 위한 것이며 신선한 원두일 수록 가스 제거에 신경을 써야 한다. 사이다도 아니고 우리가 커피에서 탄산 맛을 느끼려고 하는 게 아니지 않은가. 그게 좋다고 하면 할 말 없지만. 어쨌든 커피빵은 원두가 신선하다는 증거는 될 수 있어도 맛있는 커피라는 증거는 아니다. 로스팅 후 일주일은 지나야 맛있어진다고 하는 이유도 원두에서 가스가 나가기 때문이다. 로스팅 후 얼마만에 커피를 내릴 것인가 하는 문제는 산패와 가스 제거 양자간에 균형을 어떻게 잡을 것인가 하는 문제다.

 

화학적 요소는 커피 맛의 기초, 주춧돌이라고 할 수 있다. 이걸 잘 관리한다고 딱히 맛있어지지도 않는다. 하지만 이걸 망치면 커피 전체를 망친다. 화학적 요소를 관리하는 원칙은 "신선하게, 순수하게, 다른 성분이 안 들어가도록" 이라고 요약할 수 있겠다.

 

 

2. 물리적 요소

 

물리적 요소야 말로 모든 바리스타들을 골 아프게 만들고 이거 바꾸고 저거 바꾸느라 돈을 쓰게 만드는 주범이다. 그만큼 어렵고 복잡하며 컨트롤해야 하는 요소가 많다. 하지만 물리적 요소라는 말에서 알 수 있듯이 기본적인 요소는 간단하다. 물리적으로 커피의 성분을 얼마나 뽑아내는가이며, 표면적, 시간, 온도에 의해 좌우된다.

 

우리가 커피를 뽑을 때, 결정해야 할 것은 '얼마나 추출해야 할 것인가'이다. 같은 양의 원두에서 얼마나 많이 뽑아내느냐가 커피의 맛을 크게 좌우한다. 묽게 많이 뽑을 수도 있고, 적고 진하게 뽑을 수도 있다. 하여튼 커피의 성분을 얼마나 추출할 것인가를 결정해야 한다. 이걸 추출량이라고 하자.

 

커피의 추출량은 간단하게 아래와 같은 공식으로 말할 수 있다.

 

[추출량] = [접촉면적] x [시간] x [온도]

 

즉, 커피 입자가 물과 많이 만날 수록, 접촉 시간이 길 수록, 온도가 높을 수록 많이 뽑힌다.

 

추출량에 있어서 주의해야 할 점은 무조건 많이 뽑는다고 능사가 아니라는 거다. 원두의 모든 성분을 있는대로 다 추출한다면 우리가 원하지 않는 잡맛도 같이 우러 나오게 된다. 이걸 이해하려면 한번 추출한 원두를 가지고 다시 한번 추출해 보면 금방 알 수 있다. 도저히 못 마실 물건이 나온다. 차라리 덜 뽑는 게 많이 뽑는 것보다 낫다. 즉, 과소추출이 과대추출보다 낫다. 이걸 명심하고 우리가 원하는 만큼, 적당량만 추출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조절할 수 있는 요소 중 첫번째, 접촉면적은 커피 입자의 크기에 반비례한다. 가늘게 분쇄하면 많이 접촉하고, 굵게 분쇄하면 적게 접촉한다. 에스프레소는 접촉시간을 최소화했고, 핸드드립이나 프렌치프레스는 물과의 접촉시간을 늘린 방식이다. 따라서 에스프레소는 면적을 늘리기 위해 가늘게 분쇄하고 프렌치프레스는 줄이기 위해 굵게 분쇄해야 한다. 즉 추출방식에 따라 추출시간이 달라지며 그에 따라 분쇄도도 달라져야 한다.

 

자신이 선택한 추출방식의 특성을 이해하고 거기에 맞는 최적의 분쇄도를 찾는 것이 커피를 맛없지 않게 만드는 길이다. 예를 들어 핸드드립을 하는데 가늘게 분쇄한 원두를 쓴다면 더 느리게 추출되면서 온갖 잡맛이 들어간 커피가 나올 것이고, 에스프레소에 굵게 간 원두를 쓴다면 맛이 덜 뽑힌 커피가 나올 것이다. 추출방식에 정답은 없지만 추출방식마다 적당한 분쇄도는 있다.

 

적당히 분쇄된 원두를 만드는데 가장 중요한 도구는 그라인더이다. 좋은 그라인더는 원하는 분쇄도에 맞춰 최대한 고르게 원두를 갈아주는 놈이다. 그라인더에 집착하는 바리스타가 많은 것은 입자의 균일도가 물리적 요소 중 커피 맛에 그만큼 크게 작용하기 때문이다. 커피 용구에 투자한다면 그라인더에 가장 큰 비중을 두길 바란다. 

 

미분 제거를 강조하는 바리스타들이 많다. 분쇄된 원두를 체 같은 것으로 쳐서 미분을 최대한 제거하면 커피 맛이 많이 달라지는 것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요즘엔 이걸 위한 전용 도구도 나오고 있다. 이걸 달리 이해하면 우리가 원하지 않는 크기의 입자를 제거한다면 맛이 좋아진다고 할 수 있다. 단, 미분이 있는 맛을 선호하는 경우도 있으니 이것도 역시 케이스 바이 케이스다. 

 

그라인더 선택 요소 중 또 다른 하나는 열 발생이다. 커피를 갈 때는 강력한 마찰이 일어나고, 필연적으로 열이 발생한다. 이 열은 당연하지만 원두에 변성을 일으킬 수 있다. 따라서 좋은 그라인더는 과열을 방지할 수 있어야 한다. 핸드그라인더 수준에선 입자 분쇄도만 봐도 괜찮겠지만 전동 그라인더에선 열을 필수적으로 고려해야만 한다. 에스프레소의 경우는 약간 탄 맛을 내기 위해 그라인더의 열을 용인하는 경우도 있다.

 

추출시간과 온도는 비교적 컨트롤하기 쉬운 부분이다. 시간은 스탑워치로 재 가면서 적당한 추출시간을 정하면 되며, 물 온도는 너무 높지 않게 노력해야 한다. 신선한 원두일 수록 낮은 온도에서도 잘 추출된다. 낮은 온도로 추출할 때의 장점은 아까 말했듯이 잡맛이 덜 뽑힌다는 것이다.

 

대체로 약배전 원두일 수록 추출 온도가 낮은 편이 좋다. 너무 높은 온도에선 신 맛이 강하게 나오기 때문이다. 에스프레소 머신에서 강배전 원두를 주로 쓰는 이유는 높은 추출 온도로 인한 부분도 있다. 물론 약배전으로도 좋은 에스프레소를 뽑는 게 불가능하진 않으니 여러 가지로 테스트해 보는 게 좋다.

 

 

3. 결론

 

커피에는 오만가지 추출방식이 있지만, 모든 추출방식은 위의 세가지 물리적 요소들을 어떻게 조절하느냐 하는 문제로 귀결된다. 각각의 추출방식에서 중요한 요소들을 이해하고 그것을 조절해야 한다.

 

맛있는, 아니 맛없지 않은 커피를 뽑는 원칙은 화학적 요소에서 최대한 변인을 제거하고, 적절한 추출량을 낼 수 있도록 물리적 요소를 조절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커피 맛에 정답은 없지만, 맛 없는 커피를 만드는 요소는 있다고 생각한다. 커피를 맛 없게 만드는 요소들을 배제하는 것, 그것이 커피를 맛있게 뽑는 원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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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커뮤니티에 제가 쓴 글을 일부 수정해서 올립니다. 이 글은 제 개인적인 경험과 견문에 의해 작성된 것이니 반박, 보론 대환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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