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 & 애니메이션

자유행성동맹 국가를 들으며 소름 돋았던 순간

함부르거 2023. 4. 15. 07:44

 

은하영웅전설 애니메이션에서 처음 동맹 국가를 들었던 감상은 '뭐가 이렇게 순해' 였다. 소설에서의 묘사는 라 마르세예즈 같은 초 피끓는 혁명가였는데 곡조도 그렇고 가사도 그렇고 순딩순딩하기 그지 없었던  것. 뭐? 깃발을 날려라, 자유의 종을 울려라? 역시 외부에서 던져진 가짜 민주주의 속에서 살고 있는 일본 놈들의 민주주의 이해란 말랑말랑 꽃밭이구만.

 

...... 그러던 게, 자유행성동맹 국가도 혁명가구나, 사람의 피를 끓게 만들 수 있구나 하고 소름 돋았던 게 바로 이 장면. 이제를론 공화국 선포식.

 

자유행성동맹은 망했어, 양웬리도 죽었어, 민주주의는 끝장났다고 모두가 절망하고 있는 이 때. 한 줌의 사람들이 이제를론 요새라는 그야 말로 망망 대해 속의 쪽배에 모였다. 그리고 선포하는 거다. 민주주의의 불꽃은 꺼지지 않았노라고.

 

거기서 서툴게 시작하는 음치들의 노래. 하나는 둘이 되고 둘은 셋이 되고 이윽고 모두의 합창이 된다. 친구들이여 멀지 않았다. 주권자들은 다시 단결하여 자유의 종을 울릴 것이다. 보다 나은 미래를 위해. 모든 이를 위한  진정한 자유를 향하여.

 

은하영웅전설의 스토리를, 양웬리의 행적을 여기까지 따라 온 사람들은 울컥하지 않을 수 없다. 그리고 이 노래가 진정 혁명가임을 인정할 수 밖에 없다. 이 노래에 쌓인 사람들의 희생과 투쟁의 역사가 심금을 울리는 것이다. 

 

민주주의가 이해하기 어려운 이유는 오랜 세월을 걸쳐 수 많은 사람들이 투쟁하고 희생하면서 하나 하나 쌓아 올린 체제이기 때문이다. 자유와 평등이라는 이념의 바탕 위에 인민의, 인민에 의한, 인민을 위한 정부라는 체제를 만들기 위해 보낸 수백년의 역사가 어찌 몇 마디의 말로 이해가 되겠냔 말이다.

 

그럼에도 난 이 장면이 민주주의의 이념을 설명하는데 도움이 된다고 생각한다. 잘난 지도자가 없더라도, 대단한 구호를 내세우지 않더라도, 평범한 사람들이 모든 인류의 자유와 평등을 위해 일어설 수 있는 것이 민주주의이다.

 

전 세계에서 민주주의가 위기라고 한다. 멀리 갈 것도 없이 이놈의 나라도 욥 트류니히트 발톱의 때만큼도 안되는 인간이 대통령이니 뭐. 그런 인간이 선거로 뽑혔다는 거에서부터 절망적인 상황이 아닌가 말이다. 내가 은하영웅전설이란 이 케케묵은 작품을 다시 끄집어내게 된 것은 바로 이 시대적 상황 때문이다. 

 

이성과 합리가 부정당하고 냉소와 절망이 만연한 이 시대 과연 민주주의에 희망은 있는가?라는 질문에 다시 한 번 위 장면을 떠올리며 답을 하고 싶은 것이다. 그럼에도 민주주의의 가치는 빛 바래지 않을 것이라고. 모든 인간은 자유로와야 한다. 모든 인간은 평등하다는 그 소박하고 단순한 바램에서, 평범한 사람의 한 발자국에서 민주주의는 시작한 것이라고.

'만화 & 애니메이션' 카테고리의 다른 글

천막의 자드가르 (2022. 4. 26.)  (0) 2023.04.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