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혐 베트남(혐월) 정서 단상 (2021. 6. 28.)

함부르거 2023. 4. 4. 11:04

요즘 유튜브를 보면 넘쳐 나는 국뽕 영상 못지 않게 베트남 혐오 영상도 많이 올라오는 것 같다. 몇몇 채널은 아예 그게 전문인 것 같고. 포털 댓글 중에도 베트남 관련 기사에는 유독 악플이 많다. 이 정도 되면 혐 베트남 정서, 이른바 혐월정서라는 게 어떤 임계점을 넘지 않았나 싶다.

 
사실 왜 이런 일이 발생하는가 생각하는 건 어렵지 않다. 최근 십여년간 베트남은 세계에서 가장 경제성장률이 높은 나라였다. 대충 7% 언저리의 성장률을 꾸준히 이어 왔는데, 이는 베트남이 인구 일억명에 가까운 대국임을 생각하면 매우 인상적인 수치다. GDP 규모가 10년 사이 2배 이상 증가했으니 베트남 사람들 본인들부터가 국력의 성장을 피부로 느끼고 있을 것이다. 거기에 다른 경제지표도 모두 좋고 무엇보다 노동인구 비율이 높은 인구황금기에 접어들었다.  즉, 베트남 경제는 앞으로 더 좋아질 가능성이 크다.
 
갑작스런 경제성장, 그리고 그것이 상당기간 꾸준히 이어질 것임을 확신할 수 있는 시대. 이것은 우리 나라의 1980년대와 매우 유사하다. 마침 일인당 GDP도 베트남 2,715달러(2019년), 대한민국 2,198달러(1983년)으로 대충 비슷하고, 산업구조도 그 때의 대한민국과 비슷하다. 인플레이션을 감안해도 베트남의 경제수준은 우리의 80년대 초반과 비슷하다고 할 수 있겠다. 
 
고로 베트남 사람들의 요즘 행동을 이해하려면 우리 나라 사람들이 1980년대 하던 행동들을 보면 된다. 먹고 사는 게 비슷하면 하는 짓도 비슷해지기 마련이다.
 
1980년대 한국 사람들은 어땠을까? 어린 시절 그 시대를 살았던 나는 한마디로 단언할 수 있다. 근거 없는 국뽕에 미쳐 있었다. 외부에서 볼 땐 아직도 한참 후진국 사람들이, 자기들이 뭐라도 된 양 설쳐대는 걸 근거 없는 국뽕이라고 한다면 딱 그랬단 말이다. 이제 어느 정도 먹고 살만 해졌는데, 아직도 뭔가 주눅들고 뒤쳐져 있어서, 국가적 자존심을 세울 수 있는 일이라면 미친 듯이 달려 드는 미성숙한 사회 분위기가 팽배한 시대였다.
 
그런 분위기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게 바로 스포츠다. 올림픽은 물론 하다 못해 아시안 게임에서라도 금메달 따면 카퍼레이드하고 온 언론이 그거만 떠들고, 안방에서 치룬 올림픽에서 금메달 12개로 세계 4위랍시고 무슨 선진국이나 된 양 자랑스러워 하고... 복싱 챔피언 유명우 장정구가 경기할 때는 진짜 온 거리에 사람이 없을 정도였다. 우리가 잘났다는 증거, 인정 받는 증거를 찾는데 온 사회가 목말라하던 시절이 대한민국의 80년대였고 스포츠는 가장 찾기 쉬운 자랑거리였다.
 
지금의 베트남도 딱 그렇다. 우리가 볼 땐 고작 월드컵 최종예선 진출한 거 가지고 열광하는 베트남 사람들이 우스워 보일 것이다. 그러나 1986년, 한국이 32년만에 월드컵에 진출했을 때는 어땠나? 아시아 최강이니 뭐니 하면서 아르헨티나, 이탈리아, 불가리아라는 지옥의 조를 얼마든 통과할 수 있을 거라고 떠들어댔다. 그 때의 분위기는 우리가 월드컵 우승이라도 한 거 같았다. 

 

 
솔직히 내가 볼 땐 그 때 우리가 하던 지랄이 베트남 애들이 지금 하는 지랄 이상이면 이상이지 못하진 않았다고 본다. 지금과 그 때의 차이라면 인터넷의 유무일 것이다. 그래도 그 때 우리가 하던 지랄은 우리들끼리만 알고 넘어갔는데, 인터넷 세상인 지금은 실시간으로 전세계에 알려지고 있다는 게 차이일 뿐이다.
 
베트남은 하필이면 우리와 닮은 점이 많은 나라다. 오랜 세월 중국이란 골아픈 이웃과 부대끼며 살아온 것도 그렇고, 피비린내 나는 식민시대의 역사나 전쟁의 상처도 그렇고 말이다. 덕분에 자존심 강하고 남의 말 안 듣는 기질도 비슷하다. 그러니 나는 요즘 베트남 애들이 설쳐대는 거 얼마든 이해할 수 있다. 이제야 어깨 좀 펴고 살게 됐는데 자존심도 세우고 그러는 거지 뭐.
 
우리가 가난하던 시절을 안 겪어본 20~30대 젊은이들에겐 요즘 베트남 친구들이 깝치는 게 되게 우스워 보일 거다. 내 어릴 때는 신부나 노동자 수출이나 하던 애들이 말이지 하면서. 아마 1980년대의 한국인들을 쳐다 보던 일본인들의 느낌이 딱 이정도 아니었을까?
 
그러나 말이다. 가난했던 시절을 온전히 아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어느 정도 맛은 봤던, 그리고 무엇보다 광란의 80년대를 봐 왔던 사람으로서 젊은 친구들에게 말해 주고 싶은 게 있다.
 

 

베트남 친구들 너무 미워하지 말고, 너무 우습게 보지도 말고, 있는 그대로 보면서 자상한 눈길로 지켜봐 주자고. 베트남 사람들 욕해 봤자 우리 얼굴에 침뱉기다. 당장 니네들 아버지, 어머니, 할아버지, 할머니가 그렇게 살아 왔다니깐? 개구리 올챙이 시절 모른다는 우리 속담대로 행동하는 건 좀 아니지 않냐 이 말이다.
 
우리와 베트남은 역사적 유사성 외에도, 서로 좋은 사이로 지낼 때 이익이 매우 큰 관계다. 경제 분야는 말할 것도 없고, 중국이란 대적을 상대하는 점에 있어서도 그렇다. 베트남이 우리처럼 성장해서 대등한 입장이 되었을 때, 그들과 어떤 관계를 가질 것인가를 결정짓는 것은 지금 우리의 태도에 달려 있다. 현재 우리와 일본의 관계처럼 되지 않기 위해서라도, 유치한 혐오의 감정에 몸을 내맡기기 보단 존중과 협력을 우선시하는 게 현명한 일일 것이다.
 
베트남이 앞으로 어떻게 성장할 지는 아무도 모른다. 분명한 건 저 나라도 성장을 하다가 분명히 고비가 올 것이라는 점이다. 성장하는 경제에 맞는 정치적 변혁을 이뤄내야 하는 시점이 반드시 온다. 우리는 그걸 해냈기 때문에 지금의 선진국이 된 거고, 중국은 지금이 그 시점인데 거기서 최악의 선택을 하고 있고, 베트남은 아직 거기까지 오진 않았다. 그러니, 좀 더 지켜 보자. 우리도 지금처럼 되는데 40년 가까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