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악관의 중대 정책 발표 자리에 어린 아들을 데리고 나온 머스크의 모습을 보면서 무슨 생각이 드는가? 다른 건 다 제쳐 두고 난 "이 친구도 얼마 안 남았군" 하는 생각이 든다.
일찌기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조선 사신을 맞이하는 자리에 갓난 아들 츠루마츠를 데리고 나온 적이 있다. 조선을 깔보는 메시지였다고 보기도 하지만, 한계를 모르는 권력을 맛본 자가 도를 넘는 행동을 했다고 보는 게 일반적이다. 역사는 이렇게 도를 넘은 권력자들에게 결코 자비롭지 않았다.
지금 일론 머스크는 그야말로 욱일승천하는 기세로 권력을 농단하고 있다. 그의 DOGE는 거의 모든 정부 부처에 일사불란하게 칼질을 하고 있으니 어떤 관료든 그 앞에 덜덜 떨며 굴복하는 수 밖에 없는 상황이다. 그러나 이게 얼마나 갈까?
사실 머스크 같은 자들은 역사 속에 얼마든지 있었다. 스탈린의 예조프, 체자레 보르자의 라미로, 한 무제의 장탕, 히틀러의 룀 등등 독재자의 칼잡이 노릇을 하며 무소불위의 권력을 누리다 한순간에 제거된 인간들 말이다. 이 인간들의 공통점은 독재자 대신 손에 피 뭍히는 역할을 너무나 충실히 하다 역풍 맞고 순식간에 몰락했다는 것이다. 독재자 입장에선 이런 사람들만큼 유용한 존재가 없다. 자기 대신 피를 뒤집어 쓰며 온갖 악명을 떨쳐 주니 때 맞춰 이놈들을 제거하기만 하면 권력은 공고해지고 더러운 건 이들이 가져간다.
당분간 트럼프는 머스크가 무슨 짓을 하던 그냥 놔둘 것이다. 그가 설치면 설칠 수록 제거했을 때의 효과가 커진다. 정치와 권력의 생리를 모르는 머스크만 광대 노릇하다 사라져 갈 운명이다.
물론 머스크가 끝도 없이 질주하는 걸 제 때 잡지 못하면 트럼프도 같이 말려 들어갈 위험도 없진 않다. 그러나 내가 보기에 그럴 것 같지 않다. 2기 트럼프는 1기 때보다 훨씬 노회해졌기 때문이다.
지금 트럼프는 외국을 때리는 인기 좋고 위험성 없는 일은 거침 없이 자기가 하는 반면, 국내를 공격하는 위험하고 더러운 일은 머스크한테 전적으로 맡기고 있다. 트럼프는 1기 때 이미 관료사회를 잘못 다루면 어떤 반동이 있는지 충분히 경험해 봤다. 자신이 직접 나섰을 때 위험이 크다는 것을 알고 있다는 이야기다. 관료사회에 칼질을 해 자기 뜻대로 다루고 싶은데 마침 머스크라는 아주 좋은 도구가 손에 들어온 셈이다. 트럼프는 자기에게 반항하는 관료들을 충분히 꺾어 놨다고 판단했을 때 매우 극적으로 머스크를 제거해 버릴 것이다.
벌써부터 연방정부 지출이 중단되면서 보조금을 받지 못한 사람들의 항의전화로 마비되는 기관들이 있다고 한다. 정부 개혁이 어려운 이유는 너무나 이해관계자가 많고 복잡하기 때문에 어디서 반동이 나올 지 모르겠다는 점에 있다. 그리고 거침 없는 개혁일 수록 반동도 커질 수 밖에 없다.
사실 공무원들이 개혁에 저항하는 너무나 오래된 수법이 있다. 일을 안하면 된다. 정부는 마비되고 욕은 정치인이 들어 먹는다. 해고와 조직 해체는 저항을 더 강력하게 만들어 줄 뿐이다. 아니면 정부 기능이 진짜 작살나던가.
공무원 조직 측면에서 보자면 미국 특유의 엽관제 부활의 움직임이라고 해석하는 사람도 있다. 과장 정도 선까지는 엽관제로 채워 넣겠다는 구상일 수도 있다는데 과연 그게 실현됐을 때 미국 정부의 역량이 유지가 될 지, 부패의 위험성은 어떻게 통제할 지 지켜 봐야 할 일이다.
어쨌든 머스크의 정치적 생명은 앞으로 길어야 2년이다. 부나비처럼 권력의 빛에 다가간 사업가가 어떻게 추락할 지 흥미진진하게 지켜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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