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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리아 내전 고찰

함부르거 2024. 12. 10. 16:17

얼마 전 아사드 정권이 순식간에 붕괴하고 반군 세력이 다마스커스를 점령했다. 누구도 예측 못했던 일이지만 지금 와서 보면 당연한 일이기도 하다.

 

일단 아사드 정부군은 극심한 인적 소모로 인해 이미 붕괴 직전이었다. 아사드 정권의 핵심인 알라위파의 성인 남성 1/3이 전사했다는 이야기가 있을 정도다. 무려 13년간 이어진 내전은 안그래도 소수파였던 아사드 정부의 인적자원을 철저히 고갈시켰다. 스스로의 힘으로는 도저히 유지될 수 없던 아사드 정부가 그 오랜 시간을 버틸 수 있었던 것은 이란과 러시아의 지원이 있었기 때문이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전쟁 때문에, 이란이 이스라엘과의 분쟁 때문에 시리아에 충분한 지원을 못하게 되면서 아사드 정권엔 붕괴 외엔 다른 길이 없게 되었다.

 

시리아 내전이 이름 그대로 내전이기만 했으면 이토록 오래 이어지지는 않았을 것이다. 문제를 복잡하고 장기적으로 만든 것은 외세의 개입이다. 미국은 쿠르드족 독립군에게, 이란과 러시아는 아사드 정권에, 튀르키예는 처음엔 독자적으로 개입했다가 최근엔 이슬람 원리주의 반군에 지원을 해 왔다. 시리아 내전은 이런 중동국가들과 강대국들의 대리전이었다. 하샴 전투 같이 미군과 러시아가 직접 붙은 전투도 있었다.

 

아사드는 축출됐지만 시리아에 평화가 찾아올 지는 알 수 없다. 오히려 더 지리한 전쟁이 계속될 가능성이 높다. 다마스커스를 점령한 반군 HTS는 고작 1만5천명 규모 밖에 되지 않는다. 다른 수많은 종파와 단체들이 난립한 상황에서 이들간의 권력투쟁은 이미 시작됐다.

 

HTS는 원래 알 누스라 전선이란 이름의 원리주의 종파였다. 최근엔 소수종파에 유화적인 모습을 보이면서 튀르키예의 지원을 받아 큰 일을 해냈다. 정확한 사실은 알 수 없지만 아사드 정권을 무너뜨릴 때 군사력 외에도 회유공작을 병행하는 하이브리드 전술을 사용하지 않았을까 싶다. 시리아 정부군이 필사적으로 버텨 온 원동력에는 원리주의 종파가 정권을 잡을 경우 소수종파들은 전멸할 것이라는 공포가 있었다. 유화적으로 변모한 HTS가 지칠대로 지친 정부군에게 공작을 거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았을 것이다.

 

아사드 정권은 무너졌지만 분쟁의 요인은 여전히 차고 넘친다. 분리독립을 추진하는 쿠르드족과 이를 필사적으로 저지하려는 튀르키예는 여전히 싸우고 있다. 이란은 당분간은 개입하기 어렵겠지만 쿠르드 문제에 있어서는 튀르키예와 이해를 같이한다. 무너진 저항의 축을 재건하기 위해서도 시리아는 포기할 수 없다. 미국은 쿠르드족이 차지하고 있는 유전지대만 지킬 수 있으면 가장 평화를 반길 세력이지만 그렇다고 쿠르드족을 넘겨 주진 않을 것이다. 러시아는 지금은 철수했지만 그들의 유일한 지중해 거점이었던 시리아를 되찾고 싶어할 것이다. 이스라엘은 이 기회에 골란고원 전체를 자기들 수중에 넣고 싶어한다. 주요한 외부 세력만 이정도고 시리아 내부의 분쟁요인은 너무나 많다. 평화를 되찾기 위해서는 너무나도 복잡한 실타래를 풀어야만 한다.

 

돌이켜 보면 하페즈 아사드는 이 복잡하고 난장판 되기 딱 좋은 시리아란 나라에서 유일하게 평화와 번영을 가져온 지도자였다. 비록 그 수단이 학살과 비밀경찰로 이뤄진 독재였지만, 그나마 현대 시리아 역사에서 가장 평화롭고 먹고 살 만했던 시기는 그의 치세였다. 하페즈 시절 시리아를 다녀 온 한국 사람의 말에 의하면 치안도 안정되고 물가도 싸며 구경거리 많고 인심도 좋아 관광하기 딱 좋은 나라라는 평가였다. 비록 정치 이야기는 한국어로도 할 수 없을 정도로 비밀경찰이 천지에 깔려 있었지만 말이다. 

 

어쨌든 아사드 일가의 통치는 끝났고, 새로운 시리아의 지도자들에게는 그들이 아사드 일가보다 나은 통치자라는 것을 증명해야 하는 과제가 남았다. 너무나 지난한 일로 보여 안타까울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