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 & 뉴스 & 비평

개인화 서비스의 명과 암 - 인터넷의 역설 (2018. 2. 19)

함부르거 2023. 4. 7. 09:41

유튜브를 보다 보면 신기할 정도로 추천 영상이 내 취향에 맞게 올라오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오디션 프로그램 수상자 영상을 즐겨 봤더니 비슷한 경력의 다른 성악가 영상을 보여 준다던가, 기계 수리나 단조, 주물 같은 장인들 영상을 즐겨 봤더니 비슷한, 그리고 볼만한 영상을 제시해 준다던가 암튼 제가 모르던 채널이라도 뭔가 제 취향에 맞을 만한 걸 귀신같이 골라줍니다. 진짜 유튜브에서 추천해 주는 영상만 보고 있어도 하루 종일 시간 보낼 수 있을 정도지요. 모바일 앱 중에서 사람들이 가장 많이 시간을 보내는 게 유튜브인 걸 보면 저만 그런 것 같지 않군요.

 

사실 이 기능은 예전부터 있던 겁니다. 하지만 처음엔 그리 대단치 않았어요. 뭔가 제가 원하는 영상을 보려면 일일히 검색해 봐야 하던 시절도 있었습니다. 그러던 게 어느 순간부터, 눈치도 못 채는 사이에 이렇게 사람들을 중독시킬 정도로 발전했습니다. 데이터 분석과 인공지능 기술이 고도로 발전하면서 나온 결과지요.
 
유튜브만 이런 게 아닙니다. 페이스북은 내가 알거나 관심 있는 사람들을 속속 찾아내 보여주고, 아마존에서는 고객이 필요로 할 만한 상품을 딱 때에 맞춰서 제시하지요. 심지어 여러분이 다니는 마트에서도 쿠폰을 고객별로 맞춤형 제공한 지 오래됐습니다. 이른바 개인화 서비스의 전성시대입니다.
 
여기까지는 이 글을 읽고 계신 여러분들도 익히 알고 있는 사실입니다. 그런데도 제가 굳이 이 이야기를 하는 이유는 이런 개인화 서비스가 인터넷 이용자들을 파편화 시키고, 사회적 편견을 강화하고, 왜곡된 지식과 뉴스를 쉽게 전파시키는 게 아닌가 하는 강한 의심이 들기 때문입니다. 
 
왜 이런 생각이 들었냐면, 전에 이야기한 음모론 애호가(...) 양반은 만날 때마다 뭔가 새로운 음모론을 가져 오는데(...), 그 중요한 소스가 유튜브입니다. 유튜브에서 어떤 전문가가 이야기했더라 하면서 이상한 이론들을 들먹이는데 황당할 따름이죠. 제가 볼 때 유튜브에서 방송질하는 한국인들 중에 제대로 된 정보를 주는 인간은 거의 없습니다. 특히 무슨 박사니 뭐니 하는 인간들 중에선 말이죠. 안그래도 오프라인에서 보는 진짜 박사들도 신뢰가 안되는데, 유튜브의 자칭 박사들이 신뢰가 되나요? 유튜브의 동영상 쪼가리는 철석같이 믿으면서 그걸 크로스체킹할 능력도 생각도 없는 사람을 보면 그냥 목에 고구마 대여섯 개는 처 넣은 거 같아요. 유튜브 보고 자기가 똑똑해졌다고 생각하니 황당하고 답답하기 짝이 없는 노릇입니다. 뭐 이건 개인적인 푸념이니 여기까지 하죠.
 
암튼 요즘 10대들이 유튜브에 푹 빠져 사는 것도 그렇고 유튜브가 현대 사회의 중요한 지식채널이 되고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문제는 개인화 서비스가 철저한 유튜브에서는 사람들이 알아야 할 걸 보는 게 아니라, 보고 싶은 것만 보게 된다는 거죠. 원래 인간은 자기가 보고 싶은 것만 보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래도 공중파 방송이나 신문 같은 매스 미디어가 주종이던 시절엔 자기가 보기 싫어도 에디터에 의해 정제된 정보를 접할 수가 있었는데, 유튜브에선 순전히 자기 입맛에만 맞는 정보를, 그것도 검증되지도 않는 것들을 무한정으로 흡수하게 되는 겁니다.
 
그러니까 스포츠에 관심 있으면 스포츠만 보게 되고, 음모론에 관심 있으면 음모론만 보게 됩니다. 왜곡된 정보는 점점 강화되고 비슷비슷한 사람들끼리 커뮤니티를 이루면서 왜곡이 강화되는 프로세스가 가속되죠. 여기에 자칭 전문가들이 나와서 방송을 하기 시작하면 헬게이트가 열리는 겁니다. IS 같은 미친 놈들이 어떻게 그렇게 쉽게 자신들의 사상을 전파하고 추종자들을 포섭할 수 있었는가 유튜브의 메커니즘이 잘 설명해 주는 것 같습니다.
 
예전에 제가 트위터에 대해 편견이 증폭되는 시스템이라고 평한 바가 있는데, 유튜브는 거기에 더해서 왜곡된 정보를 강력하게 전파하는 수단이 되고 있는 겁니다. 영상이 가지는 설득력은 다른 어떤 매체보다도 강력하니까요. 터무니 없는 정보라도 동영상을 통해 접하게 되면 받아들이게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제가 인터넷을 처음 접한 90년대 중반에는 인터넷이 자유롭고 열려 있는, 지식과 사상, 문화 교류의 장이 되어 인류의 통합과 발전에 기여할 것이라는 희망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저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그런 기대를 가지고 있었죠. 그러나 오늘날 인터넷이 하고 있는 역할은 끼리끼리 파당을 지어 편견과 증오를 키우고, 왜곡된 지식을 전파하고, 여론을 파편화시켜 어떤 논의도 사회 전체적으로 공론화되기 힘들게 만들고 있습니다. 고도로 발달한 통신체계가 인류를 공동체로 만들기는 커녕 오히려 산산이 흩어 놓고 있죠. 좋은 지식이 생산되고 활용되는 게 아니라 쓰레기 정보와 가짜 뉴스와 프로파간다가 인터넷을 가득 메우고 있습니다. 인터넷의 선구자들 중에 과연 누가 이런 미래를 예측했을까요? 저는 이런 현상을 인터넷의 역설이라고 부르고 싶습니다. 인터넷이 발달할 수록 본래의 의도와는 정반대의 부작용이 더 커지는 역설 말입니다. 
 
물론 인터넷은 본래 기대하던 기능을 하고 있기도 합니다. Github이나 SourceForge 같은 사이트에서는 오늘도 정말 훌륭한 오픈소스 소프트웨어와 개발자들이 태어나고 있습니다. 그리고리 페렐만 같은 극단적인 히키코모리 수학자의 위대한 업적 arXiv 같은 학술 사이트가 없었다면 세상에 드러나는데 많은 시간이 걸렸겠죠. SETI@home 같은 분산처리 프로젝트는 인터넷이 없었다면 꿈도 꿀 수 없었을 겁니다. 그 밖에도 인터넷이 없었다면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숱한 혁신들이 지금도 일어나고 있죠.
 
문제는 인터넷을 통한 지식의 전파와 여론의 형성이 좋은 방향보다는 나쁜 방향으로 작용하는 경향이 더 강한 것 같다는 겁니다. 제대로 된 권위자보다는 인기 있는 선동가의 말이 더 효력을 가지고, 과거에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속도로 전파됩니다. 양질의 정보보다는 쓰레기 정보가 훨씬 많이 생산됩니다. 악화가 양화를 구축하는 현상은 인터넷, 특히 유튜브 같은 개인화 서비스에서 매우 강력하게 나타나고 있습니다. 트위터나 페이스북은 언급할 필요도 없겠지요. 
 
인터넷은 분명 유용한 도구이고 이제 우리의 생활과는 떨어트릴 수 없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인터넷의 역설을 극복하고 유용한 도구로서 제대로 활용하기 위해서는 많은 노력이 필요할 겁니다. 저는 특히 교육, 어릴 때부터의 교육을 강조하고 싶군요. 이젠 교육의 패러다임이 바뀌어야 합니다. 이제까지의 교육은 보다 많은 정보를 습득하고 익히는 데 치중되어 있었다면, 지금부터의 교육은 정보를 분류하고 진위를 판단하고, 가치를 평가하는 것에 초점이 맞춰져야 할 겁니다. 정보 자체를 찾아내는 것이 힘들었던 시대와 정보가 넘쳐나는 시대의 교육은 분명히 달라져야 합니다.
 
당장 우리들이 할 수 있는 일은 확실한 전문가와 비평을 통해 정제된 정보를 찾는 일을 게을리 하지 않는 것이겠습니다. 이게 대학 나온 사람한테도 쉬운 일은 아닙니다. 특히 한국처럼 교수 이야기 받아쓰기에 특화된 대학생들이 넘쳐나는 나라에서는 말이죠. 우리 나라에서 인터넷의 역설이 유난히 잘 나타나는 이유는 의문과 이의를 제기하는 것을 금기시하는 권위적 문화에 있다고 본다는 말로 이 긴 글을 마무리하겠습니다. 끝까지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