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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체제의 붕괴가 멀지 않은 듯 하다

함부르거 2024. 9. 25. 18:06

나는 1995년에 국군정보사에서 군 생활을 한 이래로 북한 문제에 대해 30년 가까이 관심을 가지고 공부 아닌 공부를 해 온 사람이다. 프로페셔널까진 아니지만 북한 관련해서 뭔가 있으면 한마디 할 수 있는 딜레탕트 정도는 된다고 할까. 이런 내가 그동안 가장 싫어하던 게 두가지 있다. 하나는 북한 붕괴설이고 다른 하나는 북한 개방설이다.

 

북한 붕괴설은 김일성 사망 때부터 줄기차게 이어 오던 보수의 레퍼토리다. 그동안 나는 곧 북한 붕괴한다는 말 들을 때마다 개소리 작작하라고 하곤 했다. 왜냐면 북한이 붕괴한다는 증거가 하나도 없었다. 내가 숱한 탈북자들을 관찰해 왔지만 그들에게서도 어떤 붕괴의 징후를 볼 수 없었다. 굶어서, 범죄자라서, 기타 등등 온갖 사유로 탈북을 하지만 그건 다 개인적인 이유다. 그런 게 체제붕괴의 증거는 아니다. 난민이 많다고 체제가 붕괴한다면 시리아의 아사드 정권은 진작에 무너졌어야 한다. 오히려 나는 탈북자들에게서 북한 체제가 굉장히 튼튼할 거란 증거만 수집할 수 있었다. 북한에서 도망치고도 김일성, 김정일 부자에 대한 존경심을 그대로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수두룩했다. 정치체제는 믿음이 사라져야 무너지는 거지 굶고 죽는다고 무너지지 않는다.

 

다른 한편으로 북한을 정상적인 국가로 생각하고 잘 달래면 개방과 화해의 길로 나갈 거라고 믿는 사람들이 있다. 난 그런 사람들을 머리 속이 꽃밭인 병신들이라고 한다. 광신과 통제와 똘똘 뭉쳐 있는 유사종교국가가 체제 변경 없이 정상국가가 된 사례는 역사적으로 없다. 저 놈들은 죽으면 죽었지 변화하지 않을 놈들이다.

 

이렇게 나는 북한의 변화에 대해 부정적이지만, 최근에 관점이 바뀌었다. 제목대로 북한 체제가 붕괴할 시간이 얼마 안 남았다고 보게 되었다. 이제부터 그 이유를 말해 보겠다.

 

첫번째로 파워엘리트들의 이탈이 가속화되고 있다.

 

독재체제일 수록 소수 엘리트들이 체제를 떠받친다. 그게 군이 될 수도 있고, 관료나 재벌 같은 집단이 될 수도 있지만 공통점은 독재자가 엘리트들의 이권을 보장해 주고, 엘리트들은 독재자의 권력을 강화해 주는 상호작용으로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이 상호작용이 원활하게 이루어지면 독재체제가 오래 가는 거고, 망가지면 붕괴하는 거다. 이건 고금동서가 하나도 다르지 않다.

 

헌데 최근 북한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들은 이 독재자와 엘리트 집단의 협력관계에 큰 균열이 일어나고 있다는 점을 보여준다.  최근 급증한 외교관 등 엘리트들의 탈북은 말할 것도 없고, 가장 큰 문제는 코로나 시기 김정은이 중국-북한 국경을 폐쇄한 이후 중국과의 관계가 회복되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교역은 물론이고 외교관계도 사실상 파탄난 상태다. 누가 뭐래도 북한 엘리트들의 이권은 거의 다 중국과의 관계에서 나왔는데 이게 완전히 망가진 것이다. 세상 어떤 독재자도 이렇게 엘리트 집단의 기반을 망가뜨리고 살아남은 사례가 없다. 김정은은 러시아와의 관계로 이걸 보충하려는 모양새인데 러시아는 절대로 중국의 역할을 대체할 수 없다. 중국이 가지고 있는 제조업, 금융, 무역 등등 뭐 하나 대체할 급이 안된다.

 

 

둘째로 후계 구도 문제다.

 

최근 김정은은 딸 주애를 공식석상에 내세우면서 후계자로 점찍는 모양새다. 나이 40 밖에 안된 김정은이 벌써 후계자를 내세우고 있다는 점도 문제지만 북한 언론의 표현이 점점 업그레이드 되고 있다는 점도 주목해야 한다. 최근 조선중앙통신, 노동신문에서 김주애에게 '향도'라는 표현을 썼다. 이건 후계자 시절 김정일에게나 붙던 표현이다. 

 

문제는 딸 김주애를 전면에 내세우는 이런 행보가 북한 엘리트들에게는 매우 못마땅한 일이라는 거다. 북한은 우리의 상상 이상으로 남존여비 사회다. 여자가 사회생활 하면서 지도자급으로 나서는 일은 있을 수가 없다. 딱 우리 나라의 1960~70년대 수준으로 보면 된다. 북한 권력층 사정에 정통한 탈북 엘리트들이 하나같이 말하는 게 여자가 권력을 가지는 건 북한에서 있을 수 없는 일이라는 거다. 그나마 백두혈통이니까 김여정, 김경희 같은 여자들이 한자리 차지하고 있을 뿐이다. 엄연한 성인 여성인 김여정이 활동하는 것도 못마땅한 판에 어린 여자애를 전면에 내세운다? 이건 위에 말한 파워 엘리트들의 이반을 가속화할 뿐이다.

 

 

셋째 장마당 세대의 대두다. 

 

지금 북한의 20~30대 청년층은 장마당에서 성장한 세대다. 90년대 고난의 행군시기 배급체계가 망가지면서 북한에 등장한 장마당은 온갖 탄압에도 불구하고 북한 민생경제의 핵심으로 기능해 왔다. 현재 북한의 젊은이들은 장마당의 시장경제가 체화된 사람들이며, 이른바 '당의 은혜'라는 걸 모르고 자란 사람들이다. 노동당에 의지하지 않고 주체적으로 살아온 이들이 과연 현재의 김정은 체제를 어떻게 볼까? 

 

곳곳에서 장마당 세대가 북한 체제에 반항하고 있는 모습이 관찰되고 있으며, 이에 따른 탄압도 가속화되고 있다. 예전에는 끽해야 노동교화형 정도로 너그럽게 봐 주던 남한 드라마 시청 같은 일에 공개사형까지 때리고 있는 것은 김정은이 젊은 세대의 이반에 얼마나 초조해 하고 있는가를 보여주는 증거다.

 

 

넷째 공포정치의 연속이다.

 

김정은의 집권 초기 수많은 당 간부들이 처형됐다. 그 때 한국 언론에서는 당장 북한이 무너질 것처럼 호들갑을 떨었지만, 난 군주 교체시에 늘상 일어나는 숙청작업일 뿐으로 봤고 그 점은 틀리지 않았다. 장성택 등등이 처형됐지만 옛 군주의 권신이 새 군주에게 처형되는 건 전제군주제에선 너무나 흔한 일이다.

 

문제는 이런 공포정치가 김정은 집권 10년이 넘은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는 거다. 북한 공식매체에 나오는 일은 적지만, 툭하면 간부들이 처형되고 있다는 건 북한 문제에 관심 있는 사람이면 다 아는 일이다. 김정은이 이렇게 아직도 공포정치를 이어가고 있다는 건 그만큼 장악력이 떨어진다는 증거로 볼 수 있다. 공포라는 감정은 강력하지만 그만큼 효과가 빠르게 떨어지기 때문이다. 인간은 공포에 쉽게 익숙해지기 때문에 공포정치는 단기적이지 않을 경우 정변의 구실이 되기만 좋다는 게 정설이다. 

 

 

이상의 상황을 개괄하면 현재 북한은 그 어느 때보다도 내부결속력이 취약하다고 진단할 수 있다. 엘리트들과 지도자의 상호 이해관계는 파탄 났으며, 젊은 민중들은 당의 지도를 불신하고 있다.

 

물론 이런 상황이 곧바로 북한 체제의 붕괴로 이어지진 않는다. 당과 군이 김정은을 지지하고 있는 한 북한 체제가 무너질 일은 없다. 그러나, 김정은에 대한 불신과 불만이 차곡차곡 누적되고 있는 것은 확실하며, 특히 경제적 어려움을 빠른 시일 내에 해소하지 못하면 위기는 더욱 증폭될 것이다.

 

지난 30여년간 북한을 관찰해 온 입장에서 볼 때, 이러한 체제 위기는 처음 있는 일이다. 처음 있는 일이기 때문에 해소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북한의 특성상 이런 위기는 계속 수면 하에 잠자고 있을 것이지만, 폭발할 경우 걷잡을 수 없이 상황이 전개될 건 확실하다. 과연 김정은이 이 위기를 타개할 수 있을까? 나는 그에게 그럴 능력이 없다고 본다. 탈북 엘리트들이 하나 같이 증언하는 바로는, 김정은은 북한 사회가 돌아가는 시스템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현 상황도 제대로 못 보는 인간에게서 해결책이 나올 수 있을 리 없지 않은가. 

 

이제는 빠른 시일 내의 북한 붕괴를 전제로 비상계획을 짜야 한다. 북한 체제는 그 어느 때보다도 취약해져 있는데 세계의 정치경제적 상황은 유례가 없이 급변하고 있다. 북한의 특성이 외부의 영향이 극히 약하다는 거지만, 지금처럼 체제가 취약해져 있는 상황에서는 외부에서 큰 충격이 올 경우 어떤 일이 벌어질 지 모른다.

 

외교, 정치, 군사 모든 분야에 있어서 체계적인 대응 계획이 없다면 북한 붕괴는 대한민국에게 최악의 재앙으로 다가올 것이다. 잘못하면 전쟁은 전쟁대로 나고 그 결과로 북한 영토를 강대국들이 분할 점령하는 꼴도 볼 수 있다. 북한의 위기가 곧 우리의 위기라는 생각으로 체계적인 대응이 절실하게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