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약 1년 8개월간 유어항 여과기로 아마존 미니외부여과기를 사용하고 있었습니다. 이 물건이 나름 성능은 괜찮습니다. 어차피 여과기란 건 물만 잘 돌려 주면 여과재 양에 따라서 성능이 나오는 거니까요. 문제는 이 녀석이 물이 잘 샌다는 겁니다. 쓰기 시작한 지 1년 쯤 되면서 조금씩 새더니 이젠 어떻게 해도 막 새네요. 이게 나름 고질병이라 다른 사람들 리뷰를 봐도 어김 없이 물 새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누구는 고무밴드를 덧붙여서 해결하고 있다 하는데 제가 볼 땐 근본적인 해결책은 아닙니다. 수밀구조 자체가 안 좋아서 조금만 시간이 지나면 다시 새게 되어 있습니다.
헌데 남들은 사용한 지 2~3년 지나서야 고무패킹이 경화되면서 물이 샌다는데 전 1년 무렵부터 그랬으니 뭔가 다른 요인이 있습니다. 제가 확인해 봐도 고무 패킹이 그리 나쁜 상태는 아니었거든요. 생각해 보니 어항과 여과기 사이의 높이 차가 큰 것이 문제가 아닌가 싶습니다. 어항이 높을 수록 수압이 높아지니 이 여과기에 허용된 압력 이상이 걸려온 게 아닌가 말이죠. 가뜩이가 수밀구조가 부실한데 수압까지 높으니 보다 빨리 망가진 게 아닌가 싶습니다. 지금 어항의 높이가 110cm 정도 되는데 아마존 외부여과기에는 좀 높은 높이가 아니었나 싶어요. 물 흐름은 잘 나왔지만요.
원래 외부여과기에는 적정 양정 높이라는 게 있습니다. 이건 보통 그 여과기가 물을 쏘아 올리는 데 무리가 없는 높이라고 이해들 하는데, 이번에 제가 보니까 그 여과기가 감당할 수 있는 입수압에 해당되는 고도라는 말이 맞는 거 같습니다. 보통은 제시되는 스펙보다 높이 물을 보낼 수 있거든요. 기존의 아마존 미니외부여과기도 출력은 고작 5W지만 110cm 고도차에서 충분히 작동은 합니다. 문제는 얘가 받아낼 수 있는 입수압이 아니었다는 거죠.
여기서 제가 할 수 있는 선택이 두가지가 있었죠. 수압 때문에 문제가 발생했으니 바닥에 두던 여과기를 높여서 고도차를 줄여 주던가, 아니면 좀 더 높은 수압을 버틸 수 있는 여과기를 새로 사던가. 첫번째는 번거롭기도 하고, 어차피 다시 누수가 발생할 게 뻔하니 여지가 없었습니다. 결국 후자로 가야 하는데... 선택하기가 꽤 까다로왔습니다.
보통 용량이 큰 여과기는 강한 모터를 씀과 동시에 수밀구조가 튼튼하기 때문에 고도차를 넉넉하게 줄 수 있습니다. 수압을 잘 버틴다는 이야기죠. 작은 여과기로 갈 수록 모터도 약하고 버틸 수 있는 수압도 작아지는 거 같습니다. 저의 경우 어항 높이가 낮은 건 아니기 때문에 문제였습니다. 110cm는 자반(45x30x30cm) 어항에 그리 흔한 세팅은 아니더군요. 물생활을 처음 시작할 때는 외부여과기 쓸 생각이 없어서 신경을 안 썼는데, 막상 외부여과기로 다시 세팅하니 문제가 발생한 겁니다.
그럼 큰 여과기를 쓰면 되는 거 아닌가 싶지만, 그것도 곤란합니다. 왜냐면 적정 용량이란 게 있으니까요. 너무 큰 여과기를 쓰면 수류가 강해져서 물고기들이 힘들어 합니다. 안그래도 수류 약하게 만들려고 출수구도 바꾸고 별 짓을 다 했는데 말이죠. 또 쓸 데 없이 여과재만 많이 들어가기도 하구요. 여과력은 다다익선이라곤 하지만 너무 지나칠 필요까진 없습니다. 경험상 업체에서 권장하는 여과기 사이즈보다 한 등급 정도 위가 적절한 거 같아요.
암튼 새로 사기로 결심은 했는데... 의외로 제가 원하는 스펙의 여과기를 찾기 힘들더라구요. 원래는 에하임 살 생각이 없었는데 결국 스펙 따지다가 사게 된 겁니다. 요즘은 에하임 말고도 좋은 여과기들이 많이 나옵니다. 저도 지금 두자광폭 성어 어항에 QQ BC-1500 쓰는데 좋거든요 이거. 문제는 다른 회사들 물건엔 제가 원하는 스펙이 없더라는 거죠. 외부여과기는 대형으로 갈 수록 선택의 여지가 많은데 소형으로 가면 굉장히 까다로와집니다.
전체적으로 기존 여과기와 비슷한 스펙을 추구했습니다. 출수량은 400L/h 정도, 양정 높이는 1.1m 이상. 여과재 용량은 약 1리터 정도. 근데 이정도 스펙의 여과기가 매우 드뭅니다. 모비딕 XC-803D 같은 건 아마존 거랑 똑같이 생겨서 아웃. 그로비타 X-400 같은 건 물건은 마음에 드는데 양정 높이가 70cm 밖에 안 되서 유감이지만 아웃. 여담이지만 이 그로비타 X-시리즈 외부여과기들이 구성이 좋아 보이더라구요. 나머지 미니 외부여과기로 검색해 보면 나오는 걸이식 여과기는 에하임 거까지 포함해서 다 아웃.
이리 저리 따져 보니 결국 남는 게 에하임 2211과 2213 밖에 없더군요. 용량만 따지면 2211로 충분하지만 얘는 출수구하고 입수구 사이즈가 다른 변태적인 녀석이라 탈락입니다. 출수구 내경이 9mm라니 무슨 정수기도 아니고.. 아 정수기는 맞구나. ^^;;;
하여 최종적으로 결정된 것은 에하임 2213(클래식 250)입니다. 양정 높이 1.5m, 출수량 440 L/H, 호스 규격 12/16 mm. 완벽하게 아마존 미니여과기에 상위호환되는 전통의 걸작. 좀 비싼 게 흠이지만 운 좋게 여과재에 더블탭까지 챙겨주면서 가격도 싼 샵을 발견해서 즉각 구매해 버렸습니다. 이 사람들, 내가 사고 나니까 가격을 올려 놓더군요. ㅋㅋㅋㅋㅋㅋㅋ
에하임은 업체 쪽에서 모든 스펙을 상세하게 공개하고 있어서 선택에 큰 도움이 됐습니다. 다른 업체들 보면 있어야 하는 스펙을 빼 놓은 곳들이 많거든요. 특히 양정 높이라던가. 다른 외여기 업체들도 에하임만큼만 스펙을 공개한다면 소비자들이 혼란을 겪을 일이 없을텐데 말이죠.
2213을 세팅하고서 느낀 건 이래서 클래식이구나 하는 거였습니다. 1970년대에 처음 나온 이래로 계속 같은 모델을 팔 수 있는 힘은 단순하면서도 갖출 건 모든 걸 갖춘 데서 나오는 거 같습니다. 더할 거라곤 더블탭 밖에 없더군요. 단순명쾌하면서도 효율적인 물 흐름 구조, 한번 세팅하고 나면 신경 쓸 필요가 없는 심플한 안정감. 이후에 나온 모든 외부여과기의 기준점이 된 것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습니다. 심지어 아마존 꺼에서 쓰던 입출수구와 호스, 스폰지까지 그대로 쓸 수 있어서 개이득이었습니다. ㅋ
특히 마음에 든 부분은 여과제 바스켓입니다. 요즘 다단으로 나뉜 바스켓을 채용한 여과기가 많습니다. 아까 말한 BC-1500도 그렇고 에하임도 요즘 나온 대형 모델인 프로페셔널 시리즈에선 다단 바스켓을 쓰고 있죠. 이게 장점도 있지만 제가 느끼기엔 좀 손해인 부분도 있거든요. 장점은 여과기 세팅이나 청소할 때 힘이 적게 든다는 거고, 단점은 바스켓 자체가 여과재 공간을 잡아먹는다는 거죠. 대형 여과기는 그래도 공간에 여유가 있고, 여과재 양이 많으니 나눠서 해야 관리하기 편하지만, 여과재 양 고작 1~2리터급 여과기에 부득부득 2단 바스켓 넣은 모델들을 보면 너무 억지라고 생각이 됩니다. 아예 바스켓이 없는 것도 좀 그렇지만요.
2213의 바스켓은 마치 제작자가 '니 맘대로 세팅하기 편하게 해줄게. 그치만 여과재는 딱 이정도만 넣어'라고 말하는 것 같은 기분이 드는, 그야말로 적절함 그 자체였습니다. 사용자가 바스켓 사이즈에 맞게 여과재를 넣기만 하면 나머지는 에하임이 모든 걸 해결해 주는 느낌까지 있어요. 넉넉한 공간이 있어서 스폰지와 각종 여과재를 순서대로 세팅하기도 좋구요.
암튼 보면 볼 수록 이래서 에하임 에하임 하는구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살 땐 비싸서 망설이게 되지만 사고 나면 여과기 관련 모든 불만과 불편이 사르르 녹는 느낌? 다른 여과기를 쓰면서 느낀 불편한 점들이 하나도 없어요. 걍 얘가 있으면 물생활 끝낼 때까지 계속 쓰게될 거 같습니다. 에하임은 부품들도 전부 따로 파니 고장나면 부품만 사서 바꾸면 되니 다른 걸로 갈 이유는 더더욱 없구요. 물생활 1~2년 하고 말 거 아니면 걍 처음부터 에하임으로 가는 게 맞는 거 같습니다. 물론 이런 생각도 다른 여과기들로 경험치를 쌓아서 하게 된 거긴 하지만요.
여기까지가 제가 물생활 하면서 돌고 돌아 결국 에하임을 사게 된 이야기입니다. 긴 이야기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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