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스즈메의 문단속(2023. 3. 4)

함부르거 2023. 3. 20. 15:01

세상에 본 적 없는 여고생 액션이 온다! 여고생 한 명의 전투력은 특수부대 3인분! 여고생 빠와가 세상을 구한다!

 
...는 농담이구요. 액션 씬이 좀 많긴 합니다. ㅋㅋㅋㅋ
 
 
각설하고, 영화 보면서 울컥한 게 얼마만인지... 클라이막스 어린 아이 목소리의 신들린 연기에 눈물 안 나는 사람이 없을 거 같아요. 동일본 대지진을 뉴스로만 본 외국인 아재도 이런데 당사자인 일본인들은 오죽할까 싶습니다.
 
저는 이 영화를 신카이 마코토 재난 3부작의 결정판이라고 하고 싶습니다. 너의 이름은, 날씨의 아이에 이어 2011년 동일본 대지진의 상처를 다룬 3부작에 방점을 찍었다고 할까요.
 
지난 영화들과는 달리 이 영화는 대지진의 상처를 직접적으로 다룹니다. 일단 주인공부터 그렇고, 영화 곳곳에 보여지는 방사능 제염의 현장, 버려진 마을, 폐허가 된 공원, 건물위에 얹혀 있는 배 등등 직접적으로 말하진 않지만 특히 일본인이라면 누구나 알 수 밖에 없는 현장들을 말 없이 보여 줍니다. 그런 상처를 어떻게 치유하고 살아갈 것인가가 이 영화의 주제라고 할 수 있겠네요.
 
이렇게만 말하면 재미 없게 느껴지겠지만 이 영화는 상업적인 문법에도 충실합니다. 
 
무엇보다 저는 '신카이 마코토가 대중에게 먹히는 러브 스토리를 어떻게 만드는 지 이제야 제대로 깨달았다'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누구나 생각하는 그런 거 있잖아요. 갑자기 찾아온 운명적 연인과 폭풍같은 모험 끝에 맺어 지는 그런 고전적인 러브스토리. 여기에 액션과 신파와 판타지와 신화를 적당히 섞어서 신카이 특유의 영상미와 좋은 음악으로 버무려 놓으면 흥행 영화가 어찌 안 나오겠습니까. 이렇게 돈 버는 건 좋은 거예요. 우리는 계속 좋은 영화를 볼 수 있으니까요. ㅋㅋㅋ
 
여기까지 읽었으면 알겠지만 이 영화는 지극히 일본적입니다. 지진에 대한 일본인들의 근본적인 공포를 일본적인 신화와 판타지를 통해서 시원하게 감정적으로 해소해 주는 그런 영화예요. 영화 시작하고 얼마 안 지나 나오는 대사에 저도 '아 올해가 관동대지진 100주년이구나'하고 깨달았으니까요. 
 
그럼에도 이 영화가 우리에게도 의미가 있는 건 일본이 겪고 있는 문제와 우리의 그것이 별로 다르지 않기 때문일 겁니다. 이 영화에서 신카이가 보여 주는 우울한 풍경들은 우리도 겪고 있거나 곧 겪을 것들입니다.
 
신카이는 일본의 치부를 숨기지 않습니다. 초고령화와 인구 감소 때문에 편의점 점원은 외국인과 노인이고, 도시 곳곳에는 폐허가 널려 있고, 모자가정의 엄마가 노인들 상대로 술집 장사하고 있죠. 분명 이 영화를 불편하게 여기는 일본인들 많을 겁니다. 그럼에도 신카이는 말하고 있는 겁니다. 이게 숨긴다고 외면한다고 없어지는 문제냐고. 예술가의 역할이란 이런 거겠죠. 
 
그럼 신카이는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까요? 해결 안합니다. 영화에서 대지진은 막았을 지 모르지만 인간 사회의 문제들은 그대로예요. 그러나 그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은 힘차게 살아갑니다. 스즈메가 여행 도중에 만난 사람들은 너무나 친절하고 착합니다. 그들 덕분에 스즈메는 고난을 이겨낼 수 있었죠. 아무리 험난한 세상이라도 작은 친절과 선의가 세상을 살 수 있게 만들어준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던 걸까요. 결국 세상을 구원하는 것은 크나큰 사랑이란 이야기를 신카이는 하고 싶었던 건지도 모릅니다.
 
암튼 여운이 많이 남는 영화입니다. 저 개인적으론 앞으로도 신카이 마코토 영화는 쭉 믿고 봐도 되겠다는 확신을 주는 영화이기도 했네요. 미야자키 하야오의 시대가 가니까 신카이 마코토의 시대가 왔습니다. 일본엔 시대마다 시대정신을 대표하는 애니메이터가 있습니다. 일본의 대표 예술이 애니메이션일 수 밖에 없는 이유 같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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