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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잔 사트라피 - 페르세폴리스

함부르거 2023. 4. 13. 10:55
 
마르잔 사트라피 페르세폴리스 1, 2권은 1969년생인 작가가 이란 역사의 격동기였던 70년대말부터 80년대에 성장기를 보내면서 겪은 개인적인 기록이자 생생한 이란의 현대사이기도 합니다. 1권에서는 이란 혁명과 이란-이라크 전쟁의 현장을 어린아이의 눈으로 보여주고, 2권에서는 성장한 작가가 변해 버린 이란 사회를 어떻게 보게 되었는지를 보여 주지요.

 

나온 지 10년이 넘었습니다만 현대 이란을 이해하는 데 이 책만큼 좋은 자료도 많지 않을 거란 생각이 듭니다. 혁명이, 전쟁이 이란 사회를 바꿔 놓은 부분도 많지만 변치 않은 것도 있습니다. 
 
예를 들어 이란 사회는 외부에서 보는 것보다는 많이 개방되어 있다는 거죠. 몇 년 전에 인스타그램 같은 곳에서 히잡을 벗어 던진 이란 젋은이들 사진이 화제가 된 적이 있습니다. 비키니를 입고 풀장에서 파티를 즐기는 이란 젊은이들의 모습은 여느 서구 젊은이들과 다를 바 없었고, 이란도 변하고 있구나 하고 말들이 나왔습니다만, 이 책을 읽어 보면 요즘 그런 게 아니고 원래부터 그랬다는 걸 알 수 있을 겁니다. 
 
이 책의 작가는 어릴 때 퀸(프레디 머큐리의 그 퀸이요!)의 음악을 듣고, 메탈리카인가 아이언메이든인가 포스터를 붙여 놓고, 친구들과는 와인 파티를 즐깁니다. 네, 80~90년대에 이랬다구요. 당대의 서구 젊은이들과 별 다를 바 없습니다. 다만 종교경찰을 피해 몰래 몰래 즐기는 거죠. 오늘날도 똑같습니다. 
 
그럼 이란의 젊은이들이 모두 이렇다면 왜 지금도 이란은 엄격한 종교국가의 모습을 유지할까요? 벌써 뒤집어 졌어야 하지 않을까요? 그 젊은이들이 어떤 계층인가를 봐야 합니다.
 
작가의 아버지는 건축회사의 엔지니어고 꽤나 높은 전문직입니다. 외가 쪽은 더 대단해서, 외할아버지가 무려 왕자님이예요. 팔레비 왕조 전의 카자르 왕조의 후손이죠. 부모님 모두 외국 유학을 다녀 왔고 작가 본인도 초등학교는 비싼 프랑스계 외국인학교를 다녔죠. 한마디로 잘 사는 중산층 이상의 집안입니다. 심지어 입주가정부까지 있던 집이예요.

 

작중에서 작가의 친척들, 특히 마르크스주의자들이 직접 이야기 합니다. 국민의 8할이 문맹인 국가에서 어떻게 혁명을 할 것인가. 결국 혁명의 결과는 이슬람주의 국가가 되는 것 뿐 아닌가. 결과는 물론 이들이 예측한 대로 됐습니다. 
 
정리를 해 보죠. 여전히 이란 국민들 대다수는 가난하고 빈부격차는 상당합니다. 인터넷에 올라오는 화려한 이란 젊은이들의 삶은 잘 보이지 않는 곳에서 몰래몰래 하는 거고, 그나마 일부 도시 중산층 이상의 이야기입니다. 수영장 사진을 찍었다는 건 자기 집안에 수영장이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수영장이 집안에 있을 만한 사람들이 어떤 사람들일 지는 짐작이 가죠? 비키니 사진을 인터넷에 올리던 아가씨들이 외출할 때는 꽁꽁 싸맨 뒤에 히잡을 푹 눌러 쓰고 다닐 걸 생각하면 웃음이 나오네요. 
 
농촌에 사는 대다수 이란 국민들은 여전히 이슬람주의를 지지하고 현 신정국가 체제를 지지합니다. 이런 나라에서 과연 우리가 생각하는 서구식 개혁이 이뤄질 수 있을지는 의문입니다. 개방적인 젊은이들이 있다고 해도 일부 부유층의 이야기입니다. 나무를 보고 숲을 봤다고 생각하면 안됩니다.
 
지금 이란은 그래도 중동 국가 중에선 가장 안정적인 민주공화정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오히려 종교를 전면에 내세운 덕에 그 안에서는 숨쉴 공간이 있다고 해야 할까요? 작가에겐 이란에서의 기억이 끔찍한 일이었겠지만 덕분에 우리는 오늘의 이란을 이해할 수 있게 됐습니다. 이 책을 종교꼴통들에게 탄압받은 불쌍한 자유주의자의 기억으로 볼 지, 현 이란 사회에 대한 좋은 참고서로 볼 지는 독자의 몫일 겁니다.